나는 스스로 센 진보라고 내세우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한국적 보수세력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상상력과 인간적인 보편성을 긍정하는 다양한 관점의 차이를 좋아한다.
지난 정부 시절, 남북 관계는 다 닫혀 있는데도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며 '통일 항아리' 모금 운동을 전개했다. 그 돈은 얼마나 모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통일항아리가 먼지만 폭 덮어쓴 채 통일교육원 장식장에 전시되어 있다.
요즘도 최근에 남북 사이에 회담이 있었고, 합의가 있었지만, 남북 당국 간의 불신은 여전하다. 우리가 북을 불신하는 것을 북은 알고 있고, 우리는 북이 우리를 불신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불신이 깔려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진정성 있는 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올 3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에서 흘러나온 발언들도 그리고 현 정권 파워 엘리트들로부터 나온 통일이 곧 올지도 모른다는 발언은 통일항아리가 갖고 있는 전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이 말하는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에도 스스로 이겨냈다. 북이 무너진디면 그 때부터 더 절호의 기회가 있었던가? 그런 북 급변사태론이나 붕괴론이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설혹 그런 사태가 유발된다 하더라도 국제법상,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 관계가 순순히 우리의 흡수통일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한국전쟁 때 유엔군이 평양을 차지했을 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평양에 대통령 자격으로 방문하고자 했지만, 유엔군은 거부했다. 대신 개인 자격으로 가서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에서 연설할 수 있었다. 유엔군에서 볼 때 평양은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니었던 샘이다. 물론 우리 헌법상은 대한만국 영토이다. 또한 중국은 지금의 국제적 역학 관계에서 이북의 현 정치 권력이 유지되기를 원한다. 그런한 중국이 이북 정권이 위태로워지도록 그냥 보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남북 당국자 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데 어떻게 통일이 멀지 않았나?
남북녘의 경제적 차이를 그대로 두고 통합할 경우의 문제점에 대한 과학적 검토 없이 지금이라도 통일되면 대박이란 말인가?
통일은 대화에서 시작되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서 부시 대통령의 대결적, 냉전적 사고의 부당함을 교정하려고 했다. 부시는 화가 나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고 한다. 대체 누구길래 감히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하는 뜻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을 동반자, 형제로 여기고자 했다. 그 진정성을 북은 알았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북 당국을 인정하고 대화의 상대로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풀려나간다. 남북 서로에 이익이 되고, 그러다 보면 상호의존성도 깊어지는 그런 교류와 협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대화에는 좋은 대화, 나쁜 대화가 없다. 진정성 있는 대화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다. 상대가 나를 안 믿더라도 내가 먼저 진실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상대도 나를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