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이었나? 통일교육수업자료를 제작하여 사전 프리젠테이션을 한 날이었다. 용역을 발주한 기관에서 나온 관료들은 마치 검열관 같았다. 잣대는 오로지 이념.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을 관용하는 이념적 틀이 아니라, 분단체제 속에서 왜곡된 특수한 의미로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안보'의 잣대이다. 다소 엄숙한 분위기에서 보여주던 중 북의 소학교 아이들이 '반달'을 부르는 장면에서 불편한 표정을 짓던 것을 잊을 수 없다. 북녘 아이들이 군사훈련을 받거나 정치 사상 교양을 받는 장면을 기대했던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주위에, 심지어 학교에도 북 당국자와 만나 대화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멘탈리티를 지닌 사람들이 많다. 학생들에게 공중파 TV의 북녘 관련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북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면 거북해하거나 희화화해서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잡담을을 쉽게 목격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서 공부하다보면 왜곡된 선입견과 시각을 수정할 줄 안다. 개인마다 시간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통일교육은 자라나는 미래세대들로 하여금 열린 학습활동과 수평적인 대화, 토론을 통해 통일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통일교육의 몫이고 통일교육 교사의 몫이다.
남북의 차이를 존중하며 교류를 하다보면 남과 북의 상호의존성은 깊어지듯이, 통일교육에 있어서도 관점의 차이를 존중하고 완전한 합의가 아니라, 새로운 차이를 발생시키는 잠정적이고 부분적인 합의의 대화의 연속이 지속하면 통일교육의 상호의존성도 깊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통일교육을 이념적 잣대로 구속하지 않더라도 위와 같이 차이를 발생하는 상호의존성에서는 극단적인 이념들이 설 자리를 없다. 이런 자율적 규제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러한 통일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환경을 정치권에서 제공해 주어야 한다.
통일교육은 지금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학생들을 통일시민, 평화시민, 민주시민으로 키워 사회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이 통일시민을 키우고 우리 사회의 상호의존성을 키워나가는 토대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문점 선언의 모멘텀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져야 한다. 남북관계의 질적인 도약(정치군사적 보장 하의 남북교류협력)과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비핵화와 평화체제수립의 톱니바퀴와 맞물려 멈추지 말고 추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