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집에 온 큰 아들과 둘이 대중목욕탕에 갔다. 아들과 AI(인공지능)이 열어줄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 AI가 사람의 일을 모두 대신할 수 있을까?
나: AI는 이미 수학적 계산과 통계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예측을 잘 하고 있어.
아들: 감정은 대신할 수 없겠지?
나: 감정도 어느 정도는 흉내낼 수 있을 거야. 감정을 뇌신경의 자극과 반응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보면 말이다.
아들: 그래도 그것이 인간의 감정 자체는 아닐 거야.
나: 인간의 감정과 AI의 감정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존재할 지는 두고볼 문제인 것 같아.
아들: 인간의 아이디어와 손으로 빚어내는 상상력과 새로움의 세계는 AI가 극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을 거야.
아들: 어쨌든 인간이 하는 많을 일을 AI가 대신하게 되겠네. 그렇다면 미래에 각광받는 일은 무엇일까?
나: 여가 시간을 넘어서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 거라 생각돼. 여백의 시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아들: 그렇겠네. 인간이 새로운 상황에서 살아가게 될 것은 명확해 보여. 인간이 적응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할 새로운 상황들이 생기겠지.
아들이 선생님이고 내가 학생으로 따라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의 마지막 생각은 대화를 하다가 퍼뜩 떠오른 것이다. (어쩌면 잠재된 의식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대화는 합의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는 차이를 생성하는 일이라는 대화의 흐름과 계열은 합리성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흘러간다는 것. 그러면서 체계 안의 상호의존성이 깊어지는 그런 대화를 니클라스 루만은 말했다.
미래에는 너무나 많은 여유와 편리함에 길들여지지 않게, 인간을 고독하지 않게, 메마르지 않게, 편리함에 길들여져 영혼을 파괴하지 않도록 않게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할 것 같다. 그리고 AI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여겼던 고차적 사고와 감정의 영역을 같아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듯하다. AI와 로봇에 대한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AI에 지는 것은 인간이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승린인 것이다.